센드버드라는 스타트업의 직원으로 입사를 한 뒤 8년이 흘렀다. 맥킨지에서 약 2년반의 시간을 보냈으니,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맥킨지의 세 배가 넘는 시간을 센드버드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사실 본 블로그의 제목의 세 가지 키워드, ‘맥킨지 (컨설팅)’, ‘스타트업’, ‘존버’는 개념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의례 검증된 성공을 지향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며 입사하는 회사인 맥킨지의 위험회피적 성향이 대체로 높은 컨설턴트와 (어느 정도 투자금액 및 사업모델이 검증된 시리즈 B/C 스테이지 스타트업이 아닌) ‘극초기 스타트업’이 그리하며, 치밀한 분석을 통해 예측하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것 대비 ‘존버’라는 단어가 내포한 막막하고 비이성적인 의미가 서로 개념적으로 상충한다.
이 글은 빠르게 등장하고 진화하는 기술혁신의 드라마, 한해 100% 이상씩 성장하는 테크 스타트업의 초고속 성장 (Hyper-growth), 그리고 본인이 그 파도에 올라타 주도적으로 실행하며, 미래 산업의 주역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현재는 전략컨설팅에 몸담으며 열심히 칼을 갈고 있는 컨설팅 현업들, 혹은 그 파도에 올라타서 나와 같이 장고의 시간을 함께하는 ex-컨설팅 출신, 현업 스타트업의 산업 역군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You are the McKinsey guy!
나는 학부를 졸업한 2011년 맥킨지에 학부생 출신 컨설턴트로 입사하여 2년 반의 시간을 보냈으며, 현재는 한국 최초로 글로벌 B2B 유니콘 사례로 성장한 센드버드가 출범하던 2015년 첫번째 hire 로 스타트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컨셉 단계의 제품을 시장이 구매할만한 사업으로 키워내는 시기를 PMF (Product-market fit) 단계라 부르는데, 첫 2년간의 PMF 시기는 너무 많이 삽질을 하고, 제품의 방향성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매일의 고통과 막막함이 큰데 계속 ‘비전과 미래’라는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컨설팅에서 배운 모든 Skillset 을 사용하기는 커녕, 30년을 한결같던 내 MBTI 가 E’S’TJ에서 E‘N’TJ 로 변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초기 스타트업의 센드버드가 사업화단계로 도약하는데 컨설팅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부분도 존재한다. PMF 단계에서, 컨셉뿐인 제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고객이 기존 솔루션에서 경험하던 고통과 니즈를 반영하고, 우리의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 방식 대신에, 고객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풀어야 하는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으로 접근한 점, 이를 완벽하게 커스터마이징 된 제안서와 콘텐츠 마케팅으로 접근한 것이 그 예이다.
비정형화된 방식으로 서로 다른 산업의 기업 고객을 다뤄야 했던 컨설팅에서의 경험이 초기 영업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덕분에 한국에서의 초기 엔터프라이즈 고객 (예. KB 국민은행, SSG) 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빠르게 엔터프라이즈 고객을 수주할 수 있었다. (예. 버진모바일)
2017년 초 미국에 건너와 두번의 펀드레이징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칼을 갈고 나선 10월의 세 번째 펀드레이징에선, 센드버드가 실리콘밸리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수치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기존 고객의 Cohort 분석, 그리고 보통은 시리즈 B 스테이지 이상 단계에서 보여주는 각종 Operating metrics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2015년 극초기 단계에 누락된 데이터 들이 문제였다.
매출 및 계약들을 그대로 두었을 때 ARR (Annual Recurring Revenue) 로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기에, 바다를 졸여 소금을 얻는다는 마음의 노가다로 고객 history와 증빙을 찾아내고, 각종 합리적 추정을 통해 분석을 진행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7년 당시에는 SaaS valuations을 위한 Operating metrics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던 시기였는데, 맥킨지에서 프로젝트를 하던 방식으로 전문가 call을 하고, 합리적인 추정 및 분석을 투자자와의 대화를 통해 보강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내준 투자자의 신뢰가 미국에 와서, 차디찬 B2B 영업 현장에서 냉대만 받던 내게 큰 용기를 심어주었다. “Hey, you’re the McKinsey guy, right? I have confidence in your analysis, and while I could delve further into it, maybe we can table that for now and focus on other productive discussions in the meantime.”
“Hey, you’re the McKinsey guy, right? I have confidence in your analysis, and while I could delve further into it, maybe we can table that for now and focus on other productive discussions in the meantime.”
“이봐! 너 맥킨지 출신이잖어? 네 분석 믿어. 내가 좀 더 파볼 수 있겠지만, 일단 그건 보류하고 다른 생산적인 주제에 좀더 시간을 써보자
맥킨지에서 채워지지 않던 갈증: 글로벌, 그리고 혁신의 일선에 서는 것
과거 내가 몸담던 시기의 맥킨지는, 국내에서 소속 컨설턴트에게 가장 크게 글로벌 경험을 충족시켜줄 firm 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현재도 그런지는 정보가 없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리라 믿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스태핑은 일부 컨설턴트에만 제한된 기회로 여겨졌으며, 대부분은 국내 대기업의 글로벌 진출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을 향한 갈증을 풀곤했다. MBA를 거쳐 미국에서 근무하던 시니어 컨설턴트들도, 팀장 승진을 고려할 즈음 서울 오피스로 유턴을 오던 것이 어린 내 눈엔 어딘가 존재하는 유리천장처럼 느껴지곤 했다.
‘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심지어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 한 기회를 준다는 맥킨지에 입사했음에도 왜 나는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이 끊임 없이 내 안에서 맴돌곤 했다. Uber 등 혁신적 사업모델의 승차공유 모델이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했다고 하는데, 근무 후 회사의 프로젝트 예산으로, 편하게 모범택시에 몸을 뉘이며 퇴근하며 드는 여러 복잡한 생각은 이런 갈증을 더 크게 만들었다.
안팎으로 내가 몸담지 않은 세상에서는 혁신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 혁신을 주도하는 새로운 창업가 집단이 주목받고, 부의 이동이 일어나는데, 왜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2-3% 성장하는 산업의 고객과 그들이 의뢰하는 주제만 다루는 것인지 조바심이 나고, 초조했다.
맥킨지 밖에 나와서야 보게된 것들
그렇게 호기롭게 나선 바깥세상은 참 힘들고, 재밌었다.
사람에게서 타이틀이 떼어진다는 것은 참 힘들다.
내 손을 떠난 명함이 상대에게 몰가치하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채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상대의 무관심 혹은 애써 친절하게 인터페이스 하지만, 느껴지는 차가움에 실망하고 상처입는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곧잘 명함 떼고 나 자신 하나로 세상에 부딛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나를 정말 아끼는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에게 꽤나 유명한 맥킨지란 회사의 타이틀이 사라진, 나란 사람자체가 인정을 받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내 친구들은 천국이랬는데, 미국은 추웠다.
먼저 MBA 에 진학한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서의 미국은 천국 같았다. 아름다운 교정, 이국적인 나라로 떠난 MBA 클래스 친구들과의 여행, 화려한 인턴십 타이틀. 반면, 미국 땅을 밟은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된 ‘듣보잡’인 센드버드를 마케팅 하며 영업하는 나에겐 그런 호사는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불편함 (Discomport)이 나를 빠르게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가난은 참아도 억울한 처사는 못참는다.
센드버드에서의 내 고통은 역설적으로 가난이 끝남과 동시에 찾아왔다. 미국에서 시리즈 B 에서 1,400억의 투자금을 쓸어담고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고, 이사회 체계로 탈바꿈하고, 이사회에서 인정해주는 경력이 출중한 미국인 임원들로 회사가 채워지며 느낀 박탈감.
나를 포함 기존 구성원들이 그 시기를 슬기롭게 잘 이겨냈기에 지금은 센드버드가 한국의 그 어떤 스타트업 보다 단순 매출구성이 아닌 회사자체가 완전히 실리콘밸리의 인력구성과 운영으로 빠르게 탈바꿈한 회사가 되었지만, 그 때 당시는 정말 괴로웠다.
이후 주변을 살펴보며 알게 된 것은,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것은, 이런 비슷한 상황에 컨설턴트 출신으로 스타트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참 많이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사정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내가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나의 경우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너무 똑똑하고 이치에 밝으면, 뭔가 불공정하거나 억울한 처사가 벌어진다고 했을 때, 이를 참고 버티는 것이 자기 학대 같고, 내가 무능력하다는 낙인 같아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내가 불공정하다고 느꼈던 것이 사실은 ‘관점의 결여’에서 기인한 것이며, 그 시간을 견뎌 낸 이후, 잠시 내려놓은 다음 더 넓은 세상의 인재와 함께 팀으로 쌓아올린 것이 더 크게 돌아온다는 것을 8년간 센드버드에서 존버하며 깨닫게 되었다.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이런 관점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고 역설적인 일이다.
고객의 피드백을 가까이 두고 일하면 지칠새가 없다.
전략컨설팅 커리어는 극악무도한 근무시간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내가 일했던 컨설팅회사의 서울오피스에서는 바로미터라고 하여 팀의 일하는 시간을 측정하였는데, 빨간색 (주간 80시간 일하는 것)이 아닌 팀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애교였다. 센드버드의 첫 3년, 1,00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약 일주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 2시 이상까지 월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일했던 것 같다. 중간에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약간 줄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오전 7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나머지는 오후 10시에서 11시까지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좋다. 이건 순전히 나 혼자 일중독이어서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치거나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여러 요인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로 고객의 피드백을 가까이 두고 내가 일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임팩트를 바로 바로 얻는 것이 건전한 동기부여 수단이 된다. 밤을 세서 영업을 하고, 이후 고객 앱에 탑재되서 출시된 센드버드 제품, 그리고 증가한 매출을 보면 굉장히 큰 동기부여가 된다.
두번째로, 존중받는 문화이다. 맥킨지에선 흔히 그들을 가리켜, “Insecured Overachiever” 라고 부른다. 즉,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자신을 채찍질 하며, 불안해 하는 고성과자를 일컫는다. 나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재들은 존중받고, 스스로 목적을 찾는 문화에서 더 큰 성과를 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성취한 것보다 다른 사람덕분에 성취한게 많고 감사할 일이 많아지면,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 어느새 내 사고를 지배하던 나의 성과와 성취, 내가 뭔가를 누리기에 당연하다는 특권의식은 점점 희박해지고, 내가 사실 이룬 것이 많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이룬 것이기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잡는다.
문화는 전략을 아침으로 먹는다, 그리고 문화는 기업의 운영시스템에 좌지우지 된다.
경영 현장에서 곧잘 인용되는 “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는 전략보다 건전한 조직문화가 중요하며, 전략을 실행할 유연한 중간 매니저를 포함한 실행조직과 명확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비롯한 운영의 중요성을 일컫는 문구이다.
많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는 Chief Strategy Officer 라는 직함을 찾기 어렵다. Strategy & Operations 이라는 팀이 존재하지만, COO 혹은 CFO 하에서 운영되며, 이는 전략을 따로 분리하여 수립하는 것이 아닌 조직의 운영과정에서 당연히 추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는 관점 때문이다.
맥킨지 출신이기에 의례 전략 담당으로 현업 혹은 스타트업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주변분들이 많은데, 나의 경우는 실리콘밸리에서 전략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관점이 조직 운영에 녹아든 것을 경험하며, 전략보다는 마케팅, 영업 및 운영 커리어를 두루 거치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고, 각 커리어마다 모든 결정과 실행을 ‘전략적’으로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둘 수 있었다.
맥킨지 커리어 덕분에 ‘탁월함’에 대한 기준을 찾게 되었다.
일을 잘 한다는 것에 굳이 기준을 세워, ‘탁월함’에 이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탁월함에 대한 기준을 높여가며 일하는 인재를 만나는 것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참 행운과 같은 일이다. 뒤돌아 보건데, 내게는 국내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사들이 쌈짓돈을 가지고 컨설팅을 의뢰하는 맥킨지에서, 그 고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밤을 세워 일했던 경험이 두고두고 자산이 되어 준 것 같다.
존버를 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유한 하기에, ‘정해진 일의 범위를 넘어서’, ‘유발하는 호기심을 추가로 탐색하기 위해’, ‘디테일을 탐색하다 드는 본질적인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전략과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에서의 디테일을 챙기려고’, 집착에 가깝게 탁월함을 계속 추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첫 커리어였던 맥킨지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으로, 나는 ‘탁월함의 기준’을 갖추게 된 것을 뽑는다.
저와 비슷한 경험에서 시작하여,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센드버드의 미래를 함께 만들 동료를 찾습니다.
센드버드에 신설된 Business Operations Associate 포지션에 전략컨설팅 커리어를 바탕으로 글로벌 스타트업에 뛰어들 인재를 모십니다. 마케팅 및 영업성과 개선, 일본, 인도네시아, 호주 등의 신규 국가 개발, 신규 파트너십 발굴 및 운영 모델 개척. 뿐만 아니라 글로벌 HQ의 CEO 아젠다를 함께 고민하고 실행할 본 기회에 많은 컨설턴트, ex-컨설턴트 혹은 전략 부문과 스타트업을 경험한 인재분들의 관심을 부탁합니다.
혹시 위의 글을 읽으며, 마음에 뜻하는 바가 유사하여 지원 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통해 지원해주시면 저와 리크루팅 팀이 소중히 지원해 주신 이력을 검토하여 연락드리겠습니다. 또한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은 편하게 링크드인으로 메시지 주시거나, sanghee.lee@kimchihill.com으로 메일 주시면 회신드리겠습니다.
불편함 (Discomport) -> Discomfort 으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WordPress 원문에는 바로 수정했었는데 보시는 social을 통한 글에는 cache가 남아 있는지 여전히 discomport라고 수정이 안된 상태네요;;
항상 깊은 생각과 고민이 듬뿍 담긴 글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희님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은 매번 읽을 때마다 제게 새로운 깨우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