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드버드에 다니는 모든 구성원은, 출산을 한 당사자 및 배우자 모두 세 달간의 유급 육아 휴직을 가질 수 있다. 나 또한, 22년 5월을 기준으로 8개월이 된 영유아를 가진 초보 부모였기 때문에, 5월 16일부터 한 달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하게 되었다.
한 법인의 대표자로 등록되어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에 봉사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나의 육아 휴직이 우리 회사의 일반적인 육아 휴직과 같은 모습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회사 육아휴직의 모습은 세 달간의 기간을 자유롭게 모두 사용하여, 일과 단절되어가족에 온전히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이와는 달리 한달의 단축된 기간을 사용하였으며, 업무 중 우선순위가 높은 필수 업무에 선택적으로 참여하여 육아 휴직 기간을 보냈다.
보조적 참여자가 아닌 주 양육자가 되어 경험한 육아란 노동
원래 늦잠을 즐겨 자던 아내는, 출산 이후 늘 잠이 부족해 만성피로에 시달렸었다. 아침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컨퍼런스 콜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것과 달리,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방을 청소하며 나의 하루를 시작하였다.
육아에 보조적 참여자가 아닌, 주 양육자가 되어 경험하는 육아는 센드버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7년의 시간 동안 주간 100시간에 육박하는 업무시간 겪은 나에게도 곡소리가 나오는 강도의 노동이었다.
왜 그런지를 곰씹어보면, 육아는 ‘자기 통제 가능성’이 결여된 환경에서, 유의미한 관계 발달과 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에게 수행하는 활동이며, 자신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보람을 제외하고는 ‘발전과 성취’라는 피드백이 없는 노동이기 때문에 더 힘겹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기의 시간으로 살며 더 나은 부모, 더 나은 육아에 대한 고민에 쏟은 시간
육아 휴직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단순히 주어진 육아란 일을 수행하는 ‘B player’가 될 수는 없었다. 일에도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더 나은 방법과 지속적 개선을 추구하는 ‘A player’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한 달간의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와 소통하고 놀아주는 방법, 이유식 등 아이가 수동적이 되는 상황에서 자기 주도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등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특히 수유/이유식 및 낮잠 사이에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어른에 입장에서는 이 하루 3-4번의 2시간 정도의 놀이 시간은 지루함이 큰 시간이다. 그래서 아이의 시각에서 아이가 경험하는 시간을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어떤 장난감을 선택하고, 아이와 어떤 방향으로 부모가 마주 앉아,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베싸 (베이비 싸이언스)’와 같은 유튜브 채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회사의 글로벌 ‘Head of People development & experience’를 맡고 있는 루시아로부터, 미국에서는 이미 널리 보급된 ‘아기주도식사’에 대한 교본을 받아 열심히 시도해 봤다. 처음에는 열심히 시간 들여 만든 음식을 먹어주지 않아 기운이 빠졌지만, 내가 떠먹여주는 이유식을 지루해 하며 이유식 먹는 시간이 늘어질 때쯤 고육지책으로 다시 한번 ‘아기주도식사’를 사용해 혼용해 보니,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어른의 입장에서 육아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왜 이런 놀이 활동을 할까? 왜 분유와 이유식 먹는 것을 거부할까?’ 등의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육아 휴직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에 시간을 쏟기 어려웠을 것 같다.
아내에게 준 심리적 자유 – ‘육아에서 내가 완전히 벗어나더라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육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는 이전에는 “내가 휴가 쓰고 애를 볼테니, 나가서 친구를 만나던, 며칠 머리식히고 와라”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었다. “어떻게 그래?!”, “나가서 친구 만나다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반응이 나 또한 답답했었다.
아이 보는 일에 숙련되어 ‘풀스택 양육자’로 성장하는 나를 보며, 아내도 외출하여 몇 번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친구를 만나고 들어오며 임신부터 지금까지 18개월에 가까운 시간동안 집에서 갇혀 있다싶이 한 생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육아를 잊고 잠시 벗어나 나를 찾고 와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의미있던 부분인 것 같다.
육아 휴직을 위해 고민해야 했던 업무 우선순위의 재정비와 권한위임을 위한 프로세스 개발
사실 한 법인의 대표라는 역할을 맡아, ‘육아휴직’을 떠나 아이를 본다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이 현실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기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만 반드시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중요해 보이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세세한 디테일을 챙겨야 일이 될 것 같은데, 반드시 내가 의사결정해야 하는 업무를 고민하여, 팀원들과 공유하고, 그 외의 업무는 권한위임하고, 나 없이도 진행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와 정책을 수립하였다. 일에 떠밀려 머리속으로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우선순위에 대한 재정비와, 권한위임에 필요한 프로세스를 정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필요한 날 하루 2-4시간 정도만 선택적으로 일을 하면서, 모두가 적절한 업무 지원을 받으며 나 또한 육아 휴직을 즐 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할 공감 –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는 행복
평소 체력이 좋다고 자신하던 나도 매일 녹초가 되어, 아침에는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눈을 뜨게 되고, 손목의 건초염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형외과에서 신경주사를 맞으며,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게 되었다. 하물며, 체력이 따라주지 않거나,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 등이 있다면, 그 절망감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좋아하던 술을 끊고 업무와 육아 둘에 집중 한지 300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회사와 아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만은 가지지 말도록 하자고 다짐을 거듭한다. 상황은 계속 변할 것이다. 아이가 성장할 수록 새로운 성장통이 생길 것이며, 나와 가정, 회사 사이의 다이나믹스도 계속 변할 것이다. 다만, 아주 작게 생긴 회사의 복지라는 기회를 통해 육아의 보조 참여자에서 주 양육자로, 어른의 시간에서 아이의 시간으로 시각을 바꾸어 온전히 고민해 볼 시간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두고두고 고마워할 큰 선물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