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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 hill

영어, 토종한국인이 글로벌 스타트업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필요한가?

최근 (22년 6월 10일) 페이스북 및 지인들 사이에서 ‘아자르’의 안상일 대표가 인터뷰 한 기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참고: “내가 영어 잘했다면…” 2조에 회사 판 한국인 대표의 후회)

글로벌 진출에 대한 컨텐츠를 과거 여러번 다룬바 있어, 이번에는 글로벌 진출에 빼놓을 수 없는 영어라는 주제로 나의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다. 나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 33년을 한국에서 보낸 뒤, 2017년 센드버드를 따라 엉겹결에 미국에 와서 영어와 애증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맥킨지였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떨지 않고 회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 얼마나 잘해야 하는 것인가?

2015년 센드버드가 처음 만들어지고, 때때로 생기는 이메일을 중심으로 한 영어쓸 일에 쫄아본 적은 없었기에, 2017년 초 미국으로 적을 옮길 때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근자감’이 있었다. B2B 영업에 나서고, 후보자 인터뷰를 볼 때 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사라져 바닥을 드러내기 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단순한 과업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열심히’, ‘암기’ 해서 ‘피칭’, ‘Q&A’ 라는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었고, B2B영업,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IR 피칭에서 요구되는 영어의 벽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내가 맡을 발표 혹은 Q&A의 스크립트를 작성하여 100번 정도 완벽하게 암기하여, 실수와 수정을 반복해 20번 이상의 실전에 투입되니 실력이 급격하게 느는 게 느껴졌다.

또한, 일단 센드버드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B2B 영업은 여러 단계에 거쳐 서로 다른 팀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센드버드를 사용하기 적합한 상황인지를 검증하는 초도 미팅을 내가 진행하며, 이후 후속 미팅에서는 Solution Engineer (2017년과 달리 2022년 현재는 Sales Engineer 직군에서 이 업무를 맡고 있다) 와 CTO가 들어와 기술 실사를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계약 금액과 관련된 실사 (i.e., commercial due diligence)를 맡는 식이었다.

상대방의 비언어적 신호를 읽으며 대화와 소통 하는 것

하지만 2019년부터 내 360 Feedback에 등장해 지금도 끊임 없이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 있다. 상호작용이 본질인 대화에서 상대방의 비언어적 신호를 읽어 나가며 내 대화의 방향성을 끊임 없이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내 발표를 ‘잘했어’ 라고 안도하며, 이후 방관 혹은 수동적 태도로 미팅에 임하는 것이 아닌, 미팅 전체 참석자의 반응을, 그리고 언어로 나타나지 않은 반응을 살피며 미팅을 이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상당히 높았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비언어적 신호와 비 대면 미팅의 특성 상 상대방을 읽기 어려운 환경 또한 감안해야 한다.

마케팅 컨퍼런스의 경우도 우리 회사에 대한 인지도, 나에 대한 기대가 바닥에 가까운 상대에게 제품을 Pitching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다른 전략을 순간적으로 발휘하는 것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중립적으로 호기심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

회사에서 리더십을 맡으며, 미세한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해 효과적이고 세련된 대화에 실패하는 경험이 거듭되었다. 또한 의견을 표현하는 상황 보다, 경청한 뒤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더욱 세밀한 영어 표현이 필요했는데 예를 들어 현재 시제를 얘기하고 싶었는데, 지나친 강조의 표현으로 이해되거나, 가정형을 잘못 표현하는 것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는 잘 배우지 않는 중립적 입장이나 경향성을 표현하는 시제 (e.g., would like 대신 gravitate towards)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사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팅을 진행하며, 때로는 나와 반대되는 의견이 제시 될 때, 내 의견이 거절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왜’ 라는 문제 해결을 앞세우는 것이 모국어인 한국어 보다 어려웠다. 내 의제의 부족함을 논할 때 내 언어의 부족함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운 감정을 배제하고, 호기심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앞세우는 것을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감정과 체력이 수반된다.

상대의 작은 표현과 비언어적 소통의 맥락이 곧바로 해석되는 모국어와 달리, 영어에서는 상대방의 모든 표현이 불확실한 해석에 놓인다. 따라서, 두려움, 부끄러움, 당혹감, 무례함과 같은 다양한 감정이 나의 청취와, 해석과 전달 사이에 섞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영어로 (특히 비대면 상황에서) 회의를 했을 때 모국어 보다 더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나의 경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는 되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영어 미팅을 스케줄 하지 않고, ‘매끄러운 발음’을 포기하는 등의 완급 조절을 사용하는 편이다.

불편한 상황에 놓였을 때 영어 실력이 늘었다.

나에게 국한된 경우겠지만, 불편하고 부끄러운 상황에 놓일 수록 영어 실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나의 broken English를 해석해 보려 노력해준 친절하고 사려 깊은 미국 팀원들에 둘러 쌓였을 때 보다, 나의 멍청한 영어를 30초도 들어주지 않고 지나쳐 갔던 마케팅 컨퍼런스의 사람들, B2B 영업 콜을 마치며 했었던 수 많은 이불킥, 나의 영어 발음을 못알아 듣고 조금 날카로운 반응으로 ‘What’이라고 반문했던 팀원들이 있었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은 분들도, ‘어떤 영어코스를 들어야 하냐’보다, 영어가 나에게 있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실패라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여져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창업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문제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놓여 있다면, ‘영어’라는 문제 또한 치열하게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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