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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 hill

7년 간의 스타트업 경험이 가르쳐 준 ‘미덕의 역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관 혹은 선망하는 미덕들 중에는, 그 선망하는 마음이 너무 강렬해서 인지, 때로는 너무나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범처럼 얘기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성공한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의 인터뷰, 그들의 성공을 다룬 몇몇 책들을 통해 이러한 미덕은 신화가 되고, 당연히 따라야 할 절대 가치로 여겨지곤 한다.

예를 들면, 자율성의 문화, 로켓으로 비유하는 고속 성장, 유연성 및 언런 (Unlearn), 자신의 판단과 자아를 내려 놓음 (Egoless), 다양성, 변화와 혁신과 같은 것들이 있다.

2015년 5월, 센드버드를 시작하기 이전까지, 컨설턴트라는 직업으로 외부의 조언자 (혹은 참관인)의 역할의 머물렀던 내가, 이후 경험한 7년의 스타트업 경험은 “사람들이 평소 당연한 듯 얘기하는 미덕들, 교과서의 훌륭한 말씀이 현실에서 이뤄지려면,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수반된다”라는 깨달음을 알게 해주었다.

“사람들이 평소 당연한 듯 얘기하는 미덕들, 교과서의 훌륭한 말씀이 현실에서 이뤄지려면,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지향점들이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부단히 자신의 마음의 형상을 부수어 가며, 성장통을 겪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들 및 구성원들에게 (특히 센드버드의 팀에게) 오늘도 고생했다고, 당신이 힘든게 당연하며, 그래도 잘 해주어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래는 내가 이겨내야만 했던 ‘미덕의 역설’을 일부 예시 삼아 공유한다.


자율성

자율성에 기반한 문화를 만들고, 스스로 자율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정의 내린 목표에 기여하며, 나를 둘러싼 팀들과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협력으로 이어지는 Job Description (직무기술서)을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Task (업무)를 훨씬 넘어서는 것인데, 여기서의 핵심은 ‘회사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과 나를 둘러싼 ‘팀과의 협업을 위한 조율과 공감대’ 형성이다.

회사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목표 그리고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업무상 협업 관계에 있는 부서와 나의 직무를 조율하다 보면, ‘자율성’의 정의는 더 이상 내가 생각하는 사전적 정의의 ‘자율’ 이 아니게 되며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동의어가 되곤 한다.

로켓으로 비유하는 고속 성장

고속 성장중인 회사는 연간 50%를 넘어 의례 200%, 300%에 이르는 성장률을 기록하곤 한다. 센드버드도 성장단계에서 매년 3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회사의 중역인 당신은, 그 고속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그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것이 매일 새벽 3시까지 계속 되는 근무시간일 수도 있고, 당신이 기존에 가진 모든 경험과 인맥일 수 도 있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지금 까지 쏟아부은 모든 것에 더해 그 이상의 (300%) 노력을 더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도 지난 몇 년간 당신이 쏟아부은 모든 것이 상응하는 100%를 계속 쏟아붓기도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더 열심히 반복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고속 성장단계에 접어든 회사의 성장속도를 당신이 따라잡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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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런 (Unlearn)

언런 (Unlearn)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당신을 성공하게 한 성공 방정식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방식을 익혀 빠르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 및 새로운 기회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엔 달콤한 이 문장이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는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5년 이란 시간에 걸쳐 회사 뿐 아니라 당신 또한 나름 안정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서 밤 11시 전에 퇴근을 할 수 있고, 원하면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 지지 않던, 여러 미팅과 이사회와의 소통도 이제야 조금 손에 잡힐 만큼 겨우 익숙해졌다. 이런 당신에게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새로운 직책 혹은 새로운 국가로 가서 회사의 신규 (net new) 기회를 발굴하라고 한다.

통제 가능성의 상실에서 오는 불안함, 두려움,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그 경험의 횟수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자아를 내려 놓음 (Egoless)

솔직함이 미덕이고 타인에 대한 정이 우리 내 정서인 한국인들에겐, 감정을 상황과 업무에 결부해 강점을 만드는 역량이 탁월 한 것 같다. 실제 애정이 강력한 정서적 결합 및 몰입을 낳으며, 회사와 업무에 대한 충성도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정서의 결합과 몰입을 낳는 상황이 역전된다면, 당신을 몰입하게 한 강한 감정의 결합은 배반의 정서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감정을 인정하되 원칙에 따라 사고 하도록 나의 사고의 프레임을 완전히 재 설계하는 본질적인 자기 변혁만이 이러한 자기기만의 사고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

금문교의 화려함과 나파밸리의 풍요로움, 서로 다른 국적의 인재가 모여 혁신을 일구어 내는 기회의 땅 실리콘 밸리. 이곳에 이방인으로 선 당신의 도전을 환영한다. 당신이 위에서 언급한 언런 (Unlearn)과 이고리스 (Egoless)를 얼마나 굳세게 단련하였는지 실험할 수 있는 실험의 땅이기도 하다.

감기 몸살이 나도 학교에 나가고, 출근해서 화이팅을 보여줘야 하는 당신의 선한 의도가 무례함이 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 최대한 장문의 인사를 곁들여 쓴 이메일들이 그 이메일을 읽는 이의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는 장황함으로 비추어 진다.

이처럼 나의 선한 의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경험이며, 상대방과 나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미리 가정하면 안되고,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 ‘다양성’ 이 가지는 양면성 이었다.

어느샌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익숙해 진 지금은,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사회의 문화가 불편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인종, 교육수준, 사는 곳이 유사한 준거집단과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를 ‘나와 같다.’ 고 지나치게 가정할 때가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들은 일부 예시이며, 단순히 불평을 하고자 쓴 글은 아니다.

아름다운 가치관이 현실에 땅에 발을 내딯고, 뿌리를 내려 자라기 위해서는, 성장통이 존재한다. 이 가치관이 발아하기 위해 필요한 양면성을 이해하며, 당신에게 그 성장통이 덜 불편하길 기대한다. 나 또한 이제는이러한 가치관들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기 조금 더 편해진 것 같다.

One thought on “7년 간의 스타트업 경험이 가르쳐 준 ‘미덕의 역설’

  1. 위의 내용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에서 비롯된 내용이라 그런지 글을 읽는내내 즐거웠고 쏙속 이해가 되네요.

    소중한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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